이름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홈페이지를 보면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비니셔스 데 모라에스(Vinicius de Moraes)를 언급하던데, 혹시 그에 대한 오마주로 짓게 된 이름인가요?
경희대학교에 다니면서 그냥 친구들끼리 음악 만들 때는 따로 이름이 없었어요. 한번은 딥플로(Deepflow) 형이 저한테 곡을 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이름이 필요하게 됐어요. 근데 (본명인) 전하림으로 하기는 싫으니까 다른 이름을 고민하던 중, 한 친구가 림샷 어떠냐고 그러더라고요. “너 하림이니까 림샷으로 해.” (웃음) 그땐 막 “와, 간지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Rimshot’이란 곡도 있잖아” 하며 좋다고 쓰는데, 나중에 대팔 형이 림샷이란 팀을 결성했어요. 다시 이름을 뭘로 만들지 고민하던 차에 본(VON)형이 곡을 달라고 해서, 그때 급하게 평소 좋아하던 비니셔스 데 모라에스의 이름이 생각나, 비니셔스로 정했죠. 근데 그에 대한 오마주라기보다는 그 이름 자체가 예뻐서 쓴 거였어요. 입에 붙는 어감도 좋고, 글씨로 써도 예쁘고. 특히 힙합적이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장르 내에서 중성적인 이름이 저한테 더 편하게 느껴졌어요. 친구들이 물어볼 때는 그냥 포르투갈어권에서 쓰이는 남자 이름이라고 알려주고.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달까?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 같이 입시미술학원을 하셨어요. 그러다보니 저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죠. 아버지의 영국 유학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한 2년 반 정도 영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돌아와서는 수원과 안성에서 학교 다니고. 그리고 중학교 3학년에 저 혼자 미국 워싱턴에 사는 이모 집으로 왔어요. 이모 집이 굉장히 보수적인 가정이었던지라, 나중엔 그게 잘 안 맞아서 하숙집으로 옮겨 살았고요.
미술을 하셨던 부모님에게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영향, 많이 받았죠. 집에서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늘상 보고 자랐어요. 미학 역사나 철학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아버지는 그림을 하실 때 늘 그것에 대한 미학적인 이유를 가지셨던 분이라, 때마다 그걸 잘 설명해주셨어요. 그런 것들에서 사물을 보는 관점의 다양함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제가 보통 끄적일 때 사람을 많이 그려요. 주로 형태가 깨져 있는 사람들. 어느 날 아버지가 제 나이 때에 그린 스케치를 보는데, 그림체나 드로잉에 담겨 있는 정서들이 똑같은 거예요. 정말 신기했어요.
곡은 언제부터 만드셨어요?
미국에 있었을 때 프로듀싱을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유독 많았는데, 그림 그리거나 음악 만드는 걸로 외로움을 채웠어요. DC Tribe 자료실에 올라온 FL Studio를 다운로드 받았던 게 결정적인 계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호기심에 받았다가, 탁 찍으면 드럼이 쿵 드르륵 딱 하고 지나가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거예요.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곡을 구성하는 것도 몰라서 처음 1년 간은 몇 초짜리 루프만 만들곤 했어요.
습작 해보기 전엔 무슨 음악 들었어요?
영국에 살 때 아는 형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해서 그 형이랑 'Goodbye Best' 앨범 복사해서 매일 듣고 그랬어요. 비틀즈 좋아하던 영국 친구한테 비틀즈 테이프를 선물 받아서 그것도 즐겨 들었고요. 또 그 때 H.O.T가 유행이어서 춤 추는 친구들이랑 같이 장기자랑 나가서 '투지'나 '아이야' 같은 거 추고 그랬어요. 6학년 땐 '울트라맨이야' 하고. 중학생 때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도 하고요. 같이 춤추던 친구의 누나가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엑스 재팬(X-Japan)이랑 싸이프레스 힐(Cypress Hill) 같은 거 듣는 누나. 한번은 그 누나가 동생인 제 친구에게 테이프를 5개 정도 선물해줬는데, 그 중에 에미넴(Eminem)의 <The Marshall Mathers LP>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저한테 들려줬어요. 완전 '쇼크'였죠. "어떻게 노래에 fuck이 나오지?" 그 때부터 빠졌어요. 싸이프레스 힐의 <Black Sunday>, 우탱 클랜(Wu-Tang Clan)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같은 것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해서 듣다가 나중에는 정말 좋아서 듣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그런 누나가 있는 친구가 어린 마음에 부러웠어요.
처음 산 음반은 산타나(Santana)의 <Supernatural>이었어요. 그러다가 로린 힐(Lauryn Hill)도 듣게 되고. 중학생 돼서 인터넷으로 힙합 음악을 검색해보기 시작했어요. 명반 같은 것들. '힙합 명반' 카페 같은 데에 들락날락대면서, 나스(Nas), 닥터 드레(Dr. Dre), 맙 딥(Mobb Deep)을 들었어요. 미국에서 직접 곡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빅 엘(Big L) 같은 거 들으면서 프로듀서로 이지 모 비(Easy Mo Bee),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 로드 피네스(Lord Finesse) 찾아 듣고 그랬거든요. 그 즈음부터 샘플링을 위한 리스닝을 시작했어요. 훵크나 재즈.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Hot Pants' 따고.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들이 많이 생기면서 프로듀싱에 더욱 빠져들었죠. 학교 가서는 만날 투팍(2Pac) 그리고.
그런 음악 성향을 집안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힙합 같은 게 어른들에겐 곱게 보이지 않기도 하고.. 왜, 너무 음악에 빠져 있으면 꾸중듣기도 하잖아요.
좋아하셨어요. 어머니는 대학교 다니실 때 통기타 들고 공연도 하셨을 정도로 '흥'이 있으신 분이라, 제가 투팍 틀어놓으면 같이 춤추고 그랬어요. 'I Get Around' 거실에서 틀어놓고, 아주 재미있었죠. 아버지와는 제가 사온 재즈 음반들 같이 들으면서 재즈와 미학의 진행 과정의 유사한 지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요. 음악을 느끼는 아버지의 티끌없이 깨끗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예민한 관점 때문에 아버지는 저의 가장 중요한 크리틱이세요. 언제나 정확한 지적들을 해주시죠. 그래서 별다른 터치는 안 하셨는데, 다만 용돈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당부 정도? 돈 받으면 바로 음반 사니까. 그땐 막 한번에 CD 2장씩 사면 혼날까봐 마음 졸이고 그랬어요. "숨겨놨다가 나중에 샀다고 해야지" 하면서. <All Eyez On Me> 찾으려고 레코드 가게 돌아다니다가 <Illmatic> 사고 그랬던 것들 떠오르고 그러네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어 왔는데, 멀티미디어 영상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과 가려고 했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듣고 만드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래서 애니메이션보다는 더 열려있는 곳을 선택했어요. 여러 가지를 하고 싶어서 간 거예요.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재지 아이비(Jazzy Ivy)의 앨범 <Illvibrative Motif>에 대한 좋은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감회를 듣고 싶어요.
제가 앨범에 대한 반응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한 게, 최종 음원 파일들을 아이비 형에게 주고, 그리고 그 다다음날인가 입대했거든요. 그게 마스터링 되고 발매됐을 때는 제가 훈련소에 있을 때였고요. 훈련소에서 그 형에게 편지로 누구한테 들려줬다는 등의 소식 보고. 자대 와서야 앨범 진행이 어떻게 돼가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듣고, 아이비 형이 처음 면회 왔을 때 마스터링 된 거 들었기 때문에 앨범에 대한 반응을 생생하게 받진 못했죠.
제가 받은 반응은 단편적이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좋게 들었다는 것은 되게 신기했어요. 제가 처음 앨범 제의를 받았을 때 부담스러웠거든요. 저는 네임 밸류도 없는 상태인데. 차라리 이전에 함께 했었던 디제이 솔스케이프(DJ Soulscape)나 프라이머리(Primary) 같은 사람들이랑 하지, 받고 싶은 곡이 있으면 차라리 한두 곡 정도만 얘기를 하시지 싶었는데, 그 형은 아예 그런 욕심이 없더라고요. 저도 저를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확인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하면서 만들어보자' 하는 이야기가 된 거예요. 누군가에게 좋게 들렸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보다는 우리끼리 이게 너무 재미있으니까 빨리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 하는 마음으로 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단 한사람이라도 좋게 들으면 참 신기한 거잖아요. 우리 둘이 가졌던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전달됐다면 그 자체로도 경이로운 것 같아요. 완성도가 제가 원하던 대로 100%가 나오진 못했지만, 그 에너지가 느껴지면서 사람들이 좋게 듣고.. 어떤 걸 좋게 듣고, 거기에서 또 어떤 걸 느끼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연구해보고 싶어요.
100%의 감흥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부족함을 느끼셨나요?
둘이서만 작업한 것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남에게 피드백 받는 과정도 없었을 정도로, 그저 둘이 완전 신나가지고 만든 거거든요. 되게 짧은 기간이었어요. CD 커버에 형이 173일을 세어서 써놓았더라고요. 2010년 2월에 처음 만나서 우선 제 곡만 들려주고 이야기 나눈 다음에 작업하기로 했죠. 하루는 형이 같이 즐기고 싶은 곡들을 몇 백 개를 추려놓아서 그걸 같이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마 결정적으로 스파크가 일어나서 그 에너지로 만든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이 끝나고나서 지금은 더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잖아요. 지금 와서는 어떤 대목은 냉정하게 자를 건 자르고 더 다듬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매우 타이트하게 나온 것도 있는 반면, 어떤 건 좀 애매모호하고.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재미있었거든요. 제 욕심으로는 나중에 마스터링 단계같이 마지막 질감이 나올 때까지도 직접 손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마지막에 어떤 착오로 인해 앨범이 모노로 찍혔어요. 안에 들어와 있는 입장에서는 속 터졌죠. 누구 잘못도 아닌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피드백 들어보면, '빈티지한 질감의 원초적인 느낌을 받는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거칠고 너무 다듬어지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있는데, 그걸 읽는 저로선 좀 아쉽죠. 스테레오로 나왔으면 제가 원하던 대로 균형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이비 형이 마지막까지 혼자서 다 하다보니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미술/영상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앨범 자켓이나 뮤직비디오 몇 개 나왔던 것들을 같이 작업했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게 아쉽죠.
재지 아이비와는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경희대학교 다닐 때 만난 착(Choc) 형과 같이 작업한 'The Monument' 싱글에 재지 아이비 형이 참여하면서 그 때부터 서로 알게 됐어요. 형은 음원만 보내주고 피처링 해주는 작업 방식을 원하지 않고, 직접 만나 대화 하면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려는 사람이에요. 하루는 재지 아이비 형 집에 가서 음악 듣고 놀다가, 제 mp3p에 있있던 <Notes>에 실린 곡들 하고 당시 작업하던 곡들 몇 개를 틀어봤어요. 형이 가만히 집중하면서 듣더니만 다 듣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앨범 프로듀싱을 제안하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남에게 작업하는 곡들 들려주고 그러는 편이 아닌데, 우선 잘 들어주셔서 고마운데다가 작업 제안까지 하니 정말 좋았죠.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나는 곧 군대에 가야 하는데, 군대 가기 전에 끝내야 할 텐데, 구상 하고 있는 내 앨범도 두 개나 있는데.. 고민이 많았죠.
앨범 작업의 70%는 대화였어요. 곡 만드는 것보다 같이 음악 들으면서 이야기 하는 것. 그게 너무 좋았어요. 다른 사람들과 만들 때는 네이트온으로 제 곡 두어 개 보내고 그 쪽에서 하나를 택해서 달라고 하면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게 주였는데. 그렇게 작업하면서는 그저 제 곡을 좋게 들어줬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 게 전부였어요. 그나마도 제가 곡을 줬어도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누구한테 많이 들려주지 말고 그냥 혼자 작업하는 것이 편하겠다 하고 생각하던 차, 재지 아이비 형을 만난 거였거든요. 정말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공감대 안에서 서로 존중하는 느낌.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교감이 생긴 거예요. 그렇게 둘이서 작업하기로 결정해놓고, 아이비 형이 저를 인터뷰 했어요. 그러면서 믿음 더 두터워졌고. 제가 비트를 주면 거기에 그냥 가사를 써서 녹음하고 보내주는 게 아니라, 가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막 프리스타일 하면서 노래 가이드 치는 것처럼 녹음해서 보내줬어요. 흔하지 않은 방식인데, 같이 만든다는 느낌이 드니까 새롭고 좋더라구요.
그 형과 만나고 이야기 하는 그런 불꽃으로 앨범의 비트 반 가까이를 하루 정도에 만들었어요. 'Vnivy', 'Jindong', 'Yadan', 'Whatever Works'.. 그렇게 반 정도를 하루만에 스케치를 그려서 보내주고, 그 다음부터 같이 색칠 하면서 끝내는 작업들이었어요. "그래, 이런 거! 이런 거!" 하면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바이브가 생겨서 그렇게 같이 채색해 나가는 식으로 만들었어요. 'Kickin' Points'나 'Last Rose' 같은 곡들은 누가 그런 곡을 받고 그 위에 랩을 하겠어요? 막혀 있던 댐 같은 게 뚫리는 것 같았어요.
종종 의견 차이도 있었을 텐데요.
있었죠. 하지만 그런 건 이야기 하면서 많이 풀어냈고. 그 형은 삶이든 음악이든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에요. 저 역시 그런 형의 면모를 보면서 에너지를 얻었고요. 근데 종종 그 에너지가 너무 심하게 뻗어나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건 좀 다듬거나 단단하게 컨셉을 다져놓고 갔으면 좋겠다" 하면, 그런 제 의견을 수렴하고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이건 나에게 너무 중요해"라고 주장하면 그 때 또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진행해 나갔어요.
그러한 작용들이 잘 묻어났다고 생각하는 트랙은 무엇인가요?
하나만 말해야 하나요? (아뇨. 많이 말씀하시면 좋죠!) 이 앨범 답다 싶고, 이런 트랙이 있기 위해 앨범 작업을 했구나 하는 트랙은 'Street Science', 'Organic Props', 'Vnivy', 'Jindong', 'Simjang Talk', 'Namhee&'.. 그런 곡들은 단단하게 응집된 느낌이 있어요. 'Yadan' 같은 경우도 이 앨범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것처럼 매우 재미있고.
앞서 말씀하신 대로 <Notes>에 있는 여러 곡이 <Illvibrative Motif>에 실렸어요. 그 곡들과 앨범을 작업하면서 새롭게 만든 곡 사이에 차이가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작업이 <Notes>에 있는 곡들로 시작됐어요. 그 앨범에 있는 곡들이 많이 쓰였어요. 재지 아이비 형뿐만 아니라 본 형도 3곡 가져갔고. 차이가 있다면 의도의 차이랄까? 전혀 새롭게 만든 트랙들이 아이비 형을 만나서 나온 에너지로 만든 거라면, 그 전에 만들었던 건 저와 그 형이 가지고 있던 바이브의 교집합 속에서 만들어진 트랙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앨범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있으세요?
앨범 녹음을 몇 번 엎은 것? 다시 하고 다시 하고 했던 것. 또, 가이드 친 거! 아이비 형이 가이드를 한 트랙에 다 묶어가지고 한 40분 되는 트랙을 만들었어요. 그것도 한 트랙으로 한 게 아니라, 애드립도 넣고 그 밖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서 말이죠. 그런 트랙이 몇 번 왔어요. 그게 너무 좋았거든요. "아, 이렇게 느낌을 만들어 가는구나!" 그 느낌을 받아서 저도 비트를 완성해가며 주고 받으면서 작업했어요. 작업하면서 아이비 형의 음악에 다가가는 진실되고 겸손한 태도에 감동 받았어요. 그 형은 굉장히 에너제틱하면서도 누구보다 예민하고 신중하거든요. 같이 작업하며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확고해졌어요.
그 형이랑 저는 술 안 마시니까 주로 카페에서 만나 얘기를 했어요. 흡연구역에서 담배 쌓으면서 얘기하는데, 가사 써온 걸 그 자리에서 막 들려줘요. 형이 가사 써놓은 파일철을 이만한 걸 계속 들고 다녔거든요. 가사 쓴 글씨 보면 정성스럽게 눌러쓰거든요. 딱딱 각진 채로. 가사 하나 틀리면 다시 쓰고. 그거 꺼내서 다른 사람 개의치 않고 카페에서 들려줘요. 'Yadan'에서 "에그머니 아주머니 호주머니 뒷주머니 안주머니 짤랑짤랑 빠딱 빠닥 버뜩 버뜩 발바닥 김 모락모락" 이런 거. 같이 막 일어나서 (힙합 악수 하는 시늉을 한다) "알지? 무슨 말인지 알지?" 하면서 흥분해갖고 둘이 얘기하면, 사람들은 되게 이상하게 쳐다봤을 거예요. 시가 같은 거 말아 피고, 향 피워서 이야기 하고. 형한테는 그 모든 행동에 대해서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향을 피우는데도 "여기를 우리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거나 하는. 길을 걸어갈 때도 음악 듣다가 막 춤추면서 갑자기 딱 멈춰서 "빰-!" 하면서 비보이 포즈 하고.
그리고 제목 정한 것. 작업 마무리 때에 그 형 집에서 밤새도록 이야기 하면서 제목을 만들었어요. 아이비 형은 힙합 MC라기보다 시인 같아요. 어감 하나하나에 대한 관찰이 굉장히 예민해요. 평소에 시 읽는 걸 좋아하고. 가사를 보면 시적인 게 되게 많아요. 그렇다보니 나중에 제목을 정할 때도 굉장히 고민이 많았죠. 이 단어를 대문자로 쓰냐 소문자로 쓰냐, 처음부터 끝까지 소문자로 쓰냐 첫 글자만 대문자로 쓰냐, 이런 걸로 고민하고. Kicking이냐 Kickin'이냐, Points냐 Pointz냐. 이런 것들. 그런 걸 상의해나가는 과정도 재밌었고요.
'Jindong'이 한글로 진동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Ahwu'라는 제목은 어떻게 만들었어요?
'Ahwu'가 그것을 영어로 썼을 때 되게 원초적인 발음이잖아요. 아-우. 이게 약간 아프리카 쪽 언어 같고, 언어적인 무언가 없어진 중성적인 느낌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표기했죠.
다음에도 재지 아이비와 함께 작업하실 계획 있으세요?
네. 계속 작업할 것 같아요. 다음 앨범 같은 경우는 컨셉적으로 이미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홈페이지에 공개된 두 앨범 <Eros>, <Paradox>, 각각 어떤 앨범인지 얘기해주세요. 홈페이지를 보면 굉장히 내면적으로 써져 있는데, 그런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쪽으로.
객관적으로 말씀드리기 좀 어려운 게, 저는 그걸 다른 사람이 들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냥 그 홈페이지에 있는 이미지들처럼 제 일부분을 앨범 형식으로 전시해놓은 거였어요. 전에 어떤 분이 앨범은 프레싱 해야 의미가 있지 하시면서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기분 좋았는데, 막상 낯선 사람들이 그걸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사운드를 생각하니 자꾸 막히는 거예요. 이거는 다른 사람이 듣는 것보다, 그냥 제 내면, 제가 느낀 감정에 푹 빠져있을 때의 그 사운드를 만들고 싶고 그래야 흥이 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나 어제 이런 생각했어" "너 혹시 이런 느낌 가져본 적 있어?" 하며 말을 걸듯이 들려주곤 했거든요. 나중에는 그 작업을 굉장히 욕심냈어요. 제 신념, 제 목표. 저는 자기 삶은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증거물이었어요. 간절한 앨범이었어요. 작가가 책을 쓰는 게 자기 존재의 증명이잖아요? 저한테는 그 앨범들이 그런 의미였어요. 제게는 정말 중요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냥 선물이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입대하는 날 밤 꼴딱 새고 아침 11시에 올리고, 2시간 후에 논산에 입대했거든요. 정신 없는 와중에 친구들한테 전화 해서 "그 앨범 올렸어. 들어봐" 하면서 작별인사 하고 군대 들어갔어요.
<Eros>는 홈페이지에 있는 대로 이상에 대한 낭만, 어떤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같은 음악들이에요. 특정 인물이 있어요. 제가 얘기하고 있는 그녀. 그 사람 하고 헤어진 지 오래됐거든요. 그때 굉장히 행복했어요. 근데 사람이, 행복했던 기억이 있으면 나중엔 나쁜 것들은 다 없어지고 좋은 것만 생각나잖아요. 그런 것들이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그것 위에 만들고자 하는 이상이랑 조금씩 겹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름다움이라는 것. 아름다운이라는 단어에서 그것을 계속 만들며 다가가려고 했던 낭만적인 앨범이에요. 그런 생각들이 더욱 많아지던 중 플라톤의 'Eros' 개념에 대해 읽었는데, 지금 기억하기론 인간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하는 본능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고 어감도 마음에 들어 앨범 이름으로 짓기로 결심했죠. <Paradox>는 그냥 저 자신, 앨범이 굉장히 우울하잖아요.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전집 제목이 '우울과 몽상'이잖아요. 딱 그것 같아요. 지금의 나와 이상, 현실과 꿈. 그래서 그것을 두 개로 나눠서 낼 수밖에 없었어요. <Notes>는 일기 같은 앨범이에요. 처음으로 제 색깔을 추려내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올린 앨범이고요. 근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 많이 들어주고 피드백도 많이 해주니까, 내가 작업한 걸 같이 듣고 얘기하고 공유하는 게 정말 재미있는 거구나 싶었어요.
그럼 원래 'Eros'와 'Paradox'라는 두 가지 앨범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하다보니까..
네, 하다보니까. 원래는 'Paradox'로 다 내려고 했어요. 근데 두 가지가 한 곳에 들어가려다보니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어떤 면이 나한테 있기에 혹은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런 게 나왔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 속에서 나눠진 거예요. 'Eros'적인 곡들이 원래 더 많았어요. 제 느낌상으로는 <Notes>의 연장선격인 것이 <Eros>인 것 같아요. <Paradox>는 <Notes>와는 컨셉적으로 묶이지 못하는 것들, 어이 없을 정도로 소리 갖고 장난쳐본 것도 있고, 너무 무겁고 우울한 것도 있고.
<Notes>와 <Eros>/<Paradox> 사이에 2년이란 시간이 있잖아요. 그 사이에 음악적으로든, 그 외적인 무엇이든,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혼자 주어진 시간이 많아졌어요. 경희대 다닐 때는 힙합 동아리 생활을 했거든요. 거기서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즐거움을 맛 봤어요. 여러 가지로 미숙했겠지만, 친구들과 동방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것이 '오늘은 여기서 뭔가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흥분으로 가득했어요.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게 된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소중한 친구들 많이 만났어요. 한예종에 와서는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어요. 자취방도 얻어서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군대에 있으니까 그때 그 자취방에 있던 시간들이 되게 그리워요. 담배 냄새 나고, 겨울에는 추워서 파카 껴입고 자고 그러던 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비싼 건 아니지만 옷도 많이 사고. 원래 펑퍼짐한 차림에 노숙자처럼 하고 다녔거든요. 만날 비니 쓰고 다니고. 너 비니만 쓰고 다녀서 비니셔스 아니냐 그러고. (일동 폭소)
과에서도 활발하고 움직이고, 학교 생활도 재미있었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도 만나고, 여자도 만나고. <Notes>는 헤어지고 바로 만든 거라서 몇몇의 곡들엔 그때 그 감정 자체의 날 것이 좀 남아있죠. 헤어지자며 싸우면서 만든 비트도 있거든요. 루프 돌려놓고 하나씩 추가하면서 싸우고. 깨지고 나서 그 비트 들으면서 그 여자 집 주변 거닐고. (일동 폭소) 그렇게 헤어진 후에 또 연애를 했는데, 그 때 제가 느낀 게, 연애를 하는 저도 있지만 그 안에서 저를 관찰하는 제가 또 있다는 거였어요. 관찰하는 애. 걔가 앨범을 만들어요. 근데 그 비니셔스한테는 저도 소재고, 그 여자도 소재고, 둘이 하는 대화도 소재고.. 그런 것들을 보고 만들어내려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걸 연애에 못 바치는 거예요. 그 집 주변 거닐고 그랬던 것도, 그렇게 하는 순간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나 보려고 저를 거기에 데려다놓아 본 거죠. 그에 비해 <Eros>와 <Paradox>는 조금 더 음악적인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연애의 감정과도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었고요. 물론 어떤 감성적인 요인이 항상 영감으로 작용하지만, 그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하는 점들을 가려가면서 세공하는 시간들도 가질 수 있었어요. 앞서 말했듯 앨범 자체로서의 음악적 정체성, 표현의 태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신의 보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제 보컬도 보컬이라고 생각 안 하고 그냥 악기 하나 더 얹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믹싱 할 때도 악기처럼 했어요. 꼭 잘 부르려고 하지 않고, 그저 곡을 해치지 않을 정도. 그런 방식이 득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보통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애드립이나 음색을 넣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거든요. 악기로서 쓰인 제 목소리,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할 것 같아요.
이 세 앨범들, 나중에 프레싱 할 생각도 있어요?
거기에 있는 곡들 중 몇 개를 조금 더 발전시켜서 다음에 넣는다면 그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재지 아이비 형과 함께 하는 건 무조건 프레싱 할 텐데, 제 앨범들은 잘 모르겠네요. 제 개인 작업들은 밀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지금도 제 음악을 제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제가 말을 걸면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잖아요. 그것 자체로도 너무 좋아요. 계속 그렇게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처럼 만들고 싶어요. 그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좋은 기회가 마련되어 자본과 환경이 주어지게 된다면 프레싱은 물론 더 많은 활동들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업은 주로 어떻게 시작하는 편인가요? 건반을 잡고 그냥 연주하다가 문득 생각나면 진행해나가는 편도 있고, 어떤 구상을 그려놓고 작업에 들어가는 방향도 있을 텐데.
어떤 곡을 지금 써야겠다, 하면서 만드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개 뼈대만 있는 스케치를 그때그때 느낌대로 되게 많이 만들어놓아요. 그리고 그 다음에 소리들을 가지고 장난치듯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느낌을 만들 때도 있고,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재차 넣어보다가 거기에 훅 박혀버려서 만들어내는 곡들도 있고.
곡을 만들면서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정서적인 오리지널리티? 냄새. 코드나 화성적인 면이라기보다는, 그냥 냄새 같아요. 냄새가 느껴지면 거기 안에 취해서 닦아내고 뭘 더 뿌렸다가 빼기도 하고.. 그런 식의 냄새가 우선 마음에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귀와 몸이 숨쉬듯 제대로 반응해야겠죠.
효과음을 예상치도 못하게 세밀하게 배치해서 특유의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인상깊었어요.
수집된 소리들을 변형시키고 직접 쓴 부분도 있지만, 효과음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들 중 많은 것은 직접 연주한 것이 많아요. 'Dreaminbout U', 'Comewithme' 등등.. 많은 부분에서 악기를 효과음저럼 믹싱해놓고 그 느낌대로 소리를 내보았어요. 평소에 소리를 많이 수집해요. 신디가 있었는데 MP3P를 가져가서 그 신디의 패치를 다 딴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나씩 다 저장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폴더를 만들었죠. 그 소리가 라인을 따서 들어오는 소리가 매력 있는 반면, 후진 MP3 음질로 땄을 때의 소리도 되게 재미있거든요. ''Dreaminbout U'의 메인 멜로디와 전체적인 소리들이 그 '패치'들로 만든 거예요. 그리고 드럼이나 잠베가 있으면 그 소리들도 따고. MP3P를 들고 다니면서 흥미있는 소리들을 많이 따는 편이에요. 기차 안에서도, 길을 걸어다니면서도, 조용한 동네에서도. 방 안에 있는 뭐든 두드려서 만든 폴더도 있어요. 제 목소리도 많이 수집해놨고요. 저만의 소리와 느낌들을 만들고 싶고 듣고싶은 호기심과 경이로움에서 그런 것 같아요.
샘플링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연주 중심의 시퀀싱으로 곡을 만들고 계시는데, 특별한 변화의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샘플링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베이스만 신스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스트링도 넣어보고. 제가 느끼기에는 신스를 쓰는 것과 샘플 따는 건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듣고 싶은 소리를 넣는 걸로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신스 쓰는 것도 샘플이라고 생각해요. 샘플도 어차피 다 따놓으면 피치 다르게 해서 넣을 수 있잖아요. 스트링은 처음엔 단음으로 넣어보다가 세 음 네 음 코드로 잡고.. 리드 찍는 것도 처음엔 어색했는데 손가락 굴려가며 '코드 심봉사'처럼. 코드 공부를 하려고 책을 샀는데도 오히려 그렇게 만든 코드보다 그냥 제가 막 두드득 두두드드득 쳐가면서 고민하며 "여길까, 여길까" 하면서 만드는 게 더 좋더라고요. 그냥 제 느낌대로 하는 게 뭐 1도 2도 2-5-4 진행 이런 것보다 더 재밌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꼭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더 자유로워질 것 같거든요.
코드를 따로 교육 받은 건 아니시고요?
기타를 쳤어요. 곡 쓰려고 기타를 잡으면 배운 코드를 활용하기보다 그냥 집어서 해요. 제가 음감이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근데 느낌을 잡아내려고 할 때는 예민한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즉감적인 걸로 작업하지, 기타 배워서 기타 코드로 작업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음이 3개가 됐든 8개가 됐든, 제가 잡고 만든 코드로 했어요. 오히려 나중에 그걸 아는 친구들에게 제 CD 들려주면서 무슨 코드냐고 막 물어봐요. 제 후임이 절대음감이거든요. "아 이거는 e 플랫에서 b 플랫으로 가는 코드입니다. 어, 전하림 일병님 이거 모르십니까?" 이러면서 가르쳐줘요. 군악대에서 근무하면서 좋은 점이,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같은 장르가 아니더라도 음악 자체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전역하라고 한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아요. 아, 물론 내년 5월까지만요. 하하.
지금 트롬본을 배우고 있어요. 이거 배우면 다른 악기들도 만질 수 있거든요. 부대에 악기가 되게 많아요. 피아노, 기타, 색소폰, 트럼펫도 있어요. 여러 악기들을 익혀 나가는 게 정말 흥미로워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군대에 있으니까 하는 거겠거니 생각할 텐데, 저로선 몸이 악기한테 적응되는 과정이 제가 프로듀싱으로 샘플링 했을 때의 빚을 갚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하나 하나 불어나가면서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브라스가 생겨날 수 있었구나"하면서. 숨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뱉는 것조차도 땀나고, 한 음을 조금만 불고 있어도 숨이 차오르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입술 파르르 떨리고 허리 아프고. 그런 걸 겪다보니 샘플링한 아티스트들한테 빚을 갚는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 같아요. 불었을 때 음이 나는 것자체가 굉장히 경이롭고 신성하게 느껴져요.
'Black'이란 곡의 경우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샘플링 같던데.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나 'In A Silent Way' 둘 중에 하나였을 거예요. 짧은 구간을 샘플링해서 베이스 라인을 만들었어요.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롱 톤이 나올 때, 그걸 제가 따서 마스터건반으로 연주를 한 거거든요. 그 때 당시에는 트럼펫 연주 같다 싶어서 만들었는데, 지금 들어보면 그 소리는 신도 못 부는 연주예요. 한 사람이 똑같은 트럼펫을 동시에 불고 앉았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던 거죠. 사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제 우상과도 같아요. 그의 음악, 또 변화할 때의 그의 냉정함과 용기와 에너지.. 누군가의 어떤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모든 것이 너무 멋있어요.
'마구마구' 중, 'Vinvy'의 라임을 따서 훅으로 가는 건 누구 아이디어였어요?
제 아이디어였어요. 앨범에 푹 담겨져 있는 곡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앨범 내에서 연장선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고, 그 생생하게 상기되어 있는 느낌이 멜로우한 느낌과 언밸런스하게 맞춰지면서 나오는 상큼함도 되게 좋았어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블로그 같은 편리한 인터페이스의 공간이 아닌 홈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게 다소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원래 그림을 많이 올렸어요. 앨범을 올렸을 때에도 제가 만들어놓은 시각적인 분위기 안에서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서비스 업체에서 만들어준 프레임이나 레이아웃 속에서 이미 만들어진 게 아닌, 제 공간, 제 방식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에러도 많은데, 나중에 전역하고 잘 다듬어서 계속 그 홈페이지에 작업물들을 올릴 생각이에요. 접근성보다는 그저 제가 보여주고 싶은 그대로 보여지는 게 더 중요해요. 홈페이지도 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창이라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쌓여갈 작품이라고 여겨요. 페이지를 만드는 과정들 모두 제 생각이 담겨 있거든요. 기록이기도, 작품이기도 한 거죠.
군생활 하면 당연히 개인으로서는 영위하지 못하는 게 많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행하는 노력이 있다면?
예전에 미국에서 한국에 올 무렵 즈음부터 번호를 매겨가며 써온 일기가 있어요. 가사를 쓰든, 뭔가 주제를 정해서 쓰든, 뭔가 쓰면서 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질 수 있어요. 취침시간이나 근무 끝나고 들어와서 라이트펜 꺼내서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써요. 군대 오기 전에도 써온 거지만, 여기서는 그게 저 혼자 조용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이에요. 음악을 만들다가 글을 쓰면 여러가지 자극들에 묻혀요. 하지만 여기서는 한 단어를 쓰더라도 그 뉘앙스 자체도 굉장히 크게 다가오거든요. 오로지 텍스트로만 하는 작업의 맛을 봤달까요. 가사나 시 같은 것도 많이 쓰고 종종 그림도 많이 그려요. 나중에 시간이 더 많아지면 책도 더 많이 볼 수 있겠죠 .
아이멧뮤직 회원분들께 한 마디.
저는 음악이란 게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 충실하고 싶어요.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 제 기분이 그랬거든요. 저와 대화하는 느낌, 제 안에서 저를 바라보는 느낌. 자기의 공간에서 자기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고, 자신을 관찰하는 시간, 듣는 분들도 그렇게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관찰하면서 성숙해지는 게 사람에게서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제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시간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음악 들어주셔서, 좋게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음악 자체에게, 그 순간들에게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Notes (2008)
http://www.mediafire.com/?w2ea35by4bya5jt
Eros (2010)
http://www.mediafire.com/?snznft5n6co1rk6
Paradox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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