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딜라(J Dilla)와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 PBW)는 디트로이트 출신 유명 DJ 하우스 슈즈(House Shoes)를 통해 90년대 중반에 처음 만났다. 둘은 R&B, 소울, 재즈에 대한 사랑과 레코드 디깅과 같은 공통점을 통해 급속히 친해졌다. 몇 년 후, 딜라는 매드립(Madlib)이 자신의 인스트루멘탈을 위에 랩을 한 믹스테입을 듣고는 PBW가 막 설립한 스톤 스로(Stones Throw) 레이블에 연락을 취해 PBW와 재회하게 됐다.
딜라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 사운드였지만, 그에게는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된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재닛 잭슨(Janet Jackson)이나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는 음반을 트럭 채로 팔아치우는 수준이였고, 이들보다 판매량은 적었지만, 메이저 소속인 커먼(Common)과 루츠(The Roots)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초 MCA가 계획했던 앨범 발매를 취소하며 메이저에 진입하지 못한 딜라는 인디 레이블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2003년에 스톤 스로의 일원이 되면서 매드립과 함께 당시 획기적이고 영향력 있던 앨범 ’Champion Sound’를 발매한다. 딜라는 스톤 스로에서 2장의 앨범을 내고, 사후에도 2장이 발매되면서 짧지만 성공적인 인디 경력을 만들어냈다.
딜라의 사망 6년 후, 팬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던 재산권 문제가 해결돼 드디어 ‘Pay Jay’로 알려진 묻혀 있던 MCA 시절 앨범과 발매되지 않은 비트 무더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소문을 접한다.
컴플렉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PBW가 이러한 소문의 진상을 규명하고, 딜라의 미발매 곡들과 관련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개인 앨범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공개했다. 그리고 딜라의 클래식 앨범 ‘Donuts’의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딜라의 복잡했던 재산권 문제가 정리돼서 새 프로젝트에 쓰일 딜라 비트를 팔 수 있게 됐다는 게 정말인가요?
마 듀크스(Ma Dukes, 딜라의 어머니)랑 몇 달이나 이야기를 못 나눴어요. 그 문제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 해요. 모든 일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됐잖아요. 딜라가 아프기 시작했고, 바로 세상을 떠났죠. 그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시에 비트를 좀 팔아보자고 얘기했었는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일이 우리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딜라 재산권 진행 상황을 계속 파악하지 않아서 마 듀크스랑 얘기해봐야 할 거 같네요.
일단 마 듀크스는 내가 딜라랑 ‘Ruff Draft’랑 MCA 앨범 발매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걸 알고 계세요. 딜라가 떠난 지 6개월 쯤 뒤에 어머니가 우리한테 먼저 ‘Ruff Draft’를 발매하고, 이어서 MCA에서 만든 앨범을 발매하자고 말씀하셨거든요. MCA앨범이 좀 빡센 게, 너무 많은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어요. 칸예(Kanye West)에 매드립에, 이건 무슨 올스타 명단이에요. 매드립이랑과의 작업도 원래 그렇게 시작된 거였어요. 딜라 어머니는 MCA 앨범을 발매할 거면 스톤 스로에서 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머니와 지난 2~3달동안 재산권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없어어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는 어머니가 사무실에 방문해서 티셔츠랑 이것저것 가지러 오셨을 때 거든요. 저도 진행 상황을 잘 모릅니다.
2003년에 묻혔던 MCA 앨범 발매 계획이 있긴 있는 거군요?
재발매 얘기는 늘 있었죠. 어머니께 말씀드린 적이 있긴 한데 잘은 모르겠어요. 언젠가 발매하면 아주 좋을 거 같긴 하네요. 딜라가 스눕(Snoop Doog)의 이름을 부르는 미완성 트랙도 있어요. 이어서 스눕이 랩할 부분이 있는데 실현되지 않았죠. 우리가 승인을 받고 앨범을 발매하게 되면 스눕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해야죠.
트랙 대부분이 유출되지 않았나요?
맞아요. 그렇지만 미완성 버전이죠.
프로젝트의 저작권은 누구한테 있나요?
저도 모르지만, 스톤 스로는 아니에요. 저작권이 항상 문제였어요. MCA는 발매할 계획이 없으니 다른 누군가가 해야죠.
스톤 스로에서 딜라의 프로젝트를 더 발매할 계획인가요?
‘Donuts’ 파트2를 발매하자는 이야기는 항상 해왔어요. 제목을 그렇게 붙이진 않을 거지만요. 딜라 비트 테이프들은 그가 섭취하면 안 되는 불량 식품들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의사들이 늘 버거킹 먹으면 안 된다, 이거 먹으면 안 된다, 저거 먹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고, 딜라는 비트 테이프 이름을 불량 식품에서 따서 지었죠. 그런 테이프들 중에 ‘The Pizza Man’이라는 굉장한 작품이 있는데, 우리는 늘 그걸로 뭔가 해보고 싶었어요.
이건 전부 마 듀크스한테 달려 있어요. 어머니가 모든 결정을 내리니까요.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간이 침대에서 주무시면서 딜라 곁에 계셨죠. 아들을 정말 잘 돌봐주셨어요. 우린 어머니를 화나게 할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다른 랩퍼들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딜라의 비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은 많은 비트들이 믹스테이프에 쓰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딜라가 살아 있을 때 매드립이 그런 식으로 앨범을 만들어서 둘이 만나게 된 거잖아요. 딜라가 그걸 듣고 우리한테 연락해서는 “와썹, 맨. 같이 앨범 하나 해야겠다. 제대로 말야.”라고 한 거예요. 매드립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딜라를 만날 일도, 같이 일할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게 저한테는 좀 미묘해요. 사람들이 믹스테입 만들고 다니는 걸 비판하고 싶진 않아요. 그런데 가끔은 그런 게 좀 진부해질 수 있잖아요. 저는 트리뷰트고 뭐고 대부분 피해왔어요. 이번에는 제가 딜라 생일파티 트리뷰트를 하는데 영상으로 할 거 예요. 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거라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렇지만 딜라와 관련된 공연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진 않아요. 때로는 그런 공연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거잖아요.
딜라에 대한 질문이 지겹진 않으신가요?
그다지 많이 이야기하지도 않아요. 자주 질문 받는것도 아니고. 전 좀 뒤에서 움직이는 타입이라서요. 딜라랑 저는 같이 레코드 쇼핑 다니는 걸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딜라가 저한테 처음에 레코드 쇼핑 가자고 전화 왔을 때, 전화 끊고 나서 "방금 하나님한테 전화 받았다."라고 할 정도의 기분이었죠. 매드립한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그 둘은 한마디로 최고의 프로듀서들이죠. 힙합이든 R&B든, 모든 음악에서 둘이 최고에요.
아직도 미발매된 딜라의 비트들이 많은가요?
예, 제이락(J.Rocc)이 다 가지고 있죠. 제이 딜라에 대한 일은 제이락이 최고 권위자에요. 저한테도 딜라의 비트가 많아요.제가 웬만한 사람보다는 많이 갖고 있으니 늘 다른 DJ들로부터 트리뷰트에 쓸 테니 비트 좀 보내 달라고 전화가 오죠. 그렇지만 매드립이랑 제이락한테 제일 많아요.
그럼 'Donuts' 파트2가 나올 정도로 많은 건가요?
물론이죠. 그래서 더 아쉬워요. 딜라는 더 많은 작품을 발매하려고 했거든요. 그는 우리한테 늘 스톤 스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얘기하곤 했어요. 우리가 뮤직 비디오를 찍어주고 여러가지를 지원해주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죠. 대체로 인디 레이블은 비디오 만드는 데 돈을 쓰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냈죠.
전 딜라 같은 사람이 비디오를 원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딜라한테 비디오 만들자고 얘기하는 게 선을 넘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딜라는 항상 MED나 Oh No 같은 다른 뮤지션의 비디오 촬영장에도 와줬죠. 이들은 당시 알려지지 않은 MC들이었는데, 딜라는 이들을 지지해주고 분위기도 띄워줬어요.
'Donuts' 앨범 커버는 원래 MED 비디오에서 가져온 사진이에요. 비디오의 그 정지 영상보다 괜찮은 사진이 없어서 그걸 쓴 거죠.
제이립(Jaylib) 프로젝트는요? 매드립이 딜라 비트 위에 랩을 하면 될 거 같은데.
제이립 리믹스 앨범은 낼 수 있었지만, 딜라 없이 새로 제이립 앨범은 절대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누가 죽고 나서 뭔가를 바꾸는 건 이상한 기분이거든요. 전 원래 91년부터 93년까지 카리즈마(Charizma)와 같은 팀이었는데, 그는 스무 살에 총을 맞고 사망했죠. 그와 만든 앨범을 발매하긴 했는데, 그건 단지 카리즈마한테 앨범을 내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이에요. 제이립의 곡을 더 리믹스하거나 바꿀 생각은 없어요. 그냥 좀 이상하잖아요.
그런 일에 대해 모두가 각자의 느낌이나 뭐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있겠죠. 만약 누군가를 추모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안다면 어떤 행동이 그를 위한 최선이라는 걸 알 수 있겠죠. 그렇지만 이건 항상 복잡한 문제에요. 남은 것들을 모아서 낼 수도 있겠지만, 전 개인적으로 그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Donuts' 앨범 이후 뒤로 물러났던 거예요. 'Donuts'이 굉장한 성공을 거뒀으니 'The Pizza Man'을 바로 발매할 수도 있었죠. 돈도 많이 벌고요. 그렇지만 제 눈에는 그게 좀 잘못된 일 같았어요. 이 문제로 늘 고민해왔습니다.
딜라와 관련한 최고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하우스 슈즈를 통해 95년부터 딜라와 일하기 시작했어요. 딜라 이름을 처음 들어본 건 94년 정도였는데, 하우스 슈즈가 만나기만 하면 딜라 얘기를 했었거든요. 당시엔 제이디(Jay Dee)였으니 하우스 슈즈는 만날 '제이디, 제이디' 노래를 불렀죠. 전 딜라와 해외에서 발매할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고, 이런 저런 리믹스가 담긴 부틀렉 형식의 앨범을 만들었어요. 이건 제이디가 완전히 뜨기 전의 일이에요.
당시만해도 딜라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죠. 그래서 많은 레이블이 그를 모르고 지나쳐버렸어요. 걔네들은 좀 더 유명한 사람이나 알려진 프로듀서들이랑 작업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2000년 초반에 딜라가 스톤 스로랑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뜬 상태였죠.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나 파사이드(Pharcyde), 루츠랑 작업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딜라는 그래미 시상식 참석에는 신경도 안 썼어요. 후보로 지명되더라도 말이에요. 딜라는 그런사람이었죠. 매드립한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제가 볼 때 그 둘은 닮은 구석이 많아요.
제가 딜라랑 2000년 때 초반에 다시 연락했을 때 그가 우리를 디트로이트로 초대했어요. 직접 공항에 우리를 데리러 나오더니 스트립 클럽에도 데려가고 도시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줬죠. 그냥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더라고요. 전 딜라를 빅 스타로 느끼고 있었는데, 오히려 딜라가 우리를 스타처럼 대접해준 거죠. 전 항상 딜라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요.
원문: Andrew Barber (Complex Magazine)
번역: 한병준 / 편집: 이용훈 (IMetMusic)
아 이런거 읽으면 더 보고싶은데 어쩌면 좋누 ㅜ 기사 감사합니다